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원스톱 교육기관' 종학당
종학당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한곳에서 단계별로 교육하는 '원스톱 교육기관'이었다.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으로는 향교, 서원, 서당 등이 있었다. 그러나 종학당은 서원이나 서당과는 달리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교육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등장한 원스톱 교육 즉 한군데에서 초중고,대학 전과정을 공부하는 시스템을 이미 400여 년 전에 도입해 시행했던 것이다.
종학당은 명재가 백부 윤순거와 부친 윤선거에 이어 3대 학장(당장)에 부임하면서 명성을 드높였는데 선비교육과 함께 과거시험 준비가 무도 종학당에서 이루어져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명성이 높아지고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150년 후에는 동토의 5대손인 과천 윤정규가 건물을 늘려 확대 개편했다. 종학당은 조선 후기에 들어 최고의 명문사립대학으로 발돋움한 것으로 요즘으로 치면 서울의 연세대나 고려대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종학당의 교육체제와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윤정중 '파평윤씨 노종오방파의 유서와 전통')
1. 10세 이상의 어린 자제들을 모두 한곳에 모아 스승을 세우고 학문을 강의해 훌륭한
인재로 양성한다.
2. 택사장 : 종인 중에 재주가 있고 학문이 깊은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자제중에 글의
의미를 잘 터득한 자를 장으로 택하여 자제를 가르치게 한다.
3. 서책 : 오경과 사서를 비롯해 주자가례, 소학, 심경, 근사록 등의 책을 비치한다.
4. 섬양 : 스승에게 매월 쌀 9말을, 장에게는 쌀 7말을 지급한다.
수학자는 매월 쌀 6말과 소금, 간장, 채소를 바치고 학생의 의복과 급식은 의곡(종중
토지에서 수입되는 곡식)에서 유사가 맡아 처리한다.
5. 과독 : 10세 이산은 매일 과제로 공부하게 하고 30세 이상은 매달 과제를 주어
학문하게 한다. 독서의 순서는 율곡선생이 가르치시던 법에 따라 소학을 가르치고
차차 대학, 논어, 맹자 등으로 나가는 순서를 밟는다. 이단잡류는 부정한 책이니 보지
말고 독서할 때 본 과목은 100번에 걸쳐 암송하고 부독본은 30-40번 암송한다.
책 1권을 외우고 난 뒤 의문점이 없게 된 다음에 다른 책으로 옮긴다. 시험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실시한다. 학생은 독서한 책을 들고 이른 아침에 시험을 본다.
또 바른 행실과 가정을 다스리는 일, 재화를 유리하게 우운용하는 일, 종회의 예법
등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6. 재의 : 매일 스승과 당장은 아침 일찍 기상해 의관을 정제하고 자제들을 인솔하여 선조
산소를 향해 2번 절한다.
종학당의 규정이 적혀있는 종법에는 이처럼 아주 구체적으로 종학당의 운영지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종학당은 일반서원이나 서당과는 달리 교육과정과 목표를 설정하고 철저한 규칙과 규율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노성의 파평윤씨 집안 사람들 대부분이 종약의 교율 아래 체계화된 프로그램과 엄격한 규칙에 따라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종법에는 또 공부의 근본인 독서에 대해 독서의 의의, 독서의 순서, 독서방법 등으로 세분화하여 자세하게 강조하고 있다. 독서는 예나 지금이나 공부의 기본이지만 독세에도 방법이 있다. 초등학생이 중학생용 수준의 책을 읽으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또 초등학새이 처음부터 성인들이 보는 문학작품을 읽는다면 지루해서 책을 이내 손에서 놓고 말 것이다.
아이에게는 우선 독서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화가 그려진 책이나 그림이 많은 책을 골라 우선 큰 의미만을 전달하고 이어 다음단계로 약간의 설명이 부연된 책으로 넘어간다.
초등학교 2-3학년이 되면 그림보다 글이 많은 책을 읽히고 고학년이 될수록 내용에 충실한 책으로 옮겨간다. 또한 분야도 점차 세분화시켜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좋다. 옛날에도 아와같은 단계를 거쳐 책을 읽었다. 무작정 논어를 읽을 수 없고 주역을 공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율곡 이이레 따르면 독서의 순서로는 소학을 일고 다음으로 대학-논어-맹자-중용-시경-역경-춘추-근사록-소경 등의 순서로 하되 시간이 있으면 '사서'를 읽어야 한다.
종학당은 현재 명재고택 바로 인근에 있는 논산군 노성면 병사리에 당시의 위용이 그대로 남아 있다. 초,중,고,대학이 들어선 4개의 건물로 구성된 종학당 앞으로는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저수지 건너에는 선영이 있다. 자녀들은 조상에게 매일 문안을 드리면서 가문을 빛내겠다는 의지를 다잡게 된다. 동토은 이러한 점을 고려해 선영이 바라 보이는 곳에 종학당을 세웠을 것이다.
1564년 얕으막한 니산 아래에 터를 잡은 파평윤씨 일가가 명문가로 우뚝 서고 또 자녀교육 문화를 주도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종학당에서 이루어진 체계적인 교육에 힘입은 바 컸다고 할수 있다.
[사진출처] 다음까페 / 어린왕자의 들꽃사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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