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흔적/창작도움자료

시쓰기,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시 잉태하고 분만하기

은빛사연 2012. 12. 16. 00:03

“시란 순간적으로 나와 세상을 한번 잡아서 펼쳐보이는 작업이지요 ⓒ계간 시인세계
 
지난 10월 8일 오후 7시 서울 인사동 한정식집 ‘선천’에서 김혜순(48) 시인을 만났다. 약속시간에 어김없이 나타난 시인은 폴라에 재킷을 걸치고 까만 가방을 둘러맨 활동적인 차림이었다. 엷은 분홍빛을 띤 안경 너머의 눈매는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인터뷰 내내 유쾌한 웃음과 농담으로 분위기는 이내 훈훈해졌다.

시인은 인터뷰를 위해 안산에 있는 학교(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2년 전 학교가 남산에서 안산으로 옮기면서 출퇴근 시간이 15분에서 1시간 30분으로 늘었어요.”

정작 음식상을 놓고 마주 앉으니 시인의 머리 모양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갔다. 이마 바로 위에 있는 흰머리를 핀으로 꽂은 모습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동행했던 김요일 시인이 “브릿지한 거 아니세요?”라며 먼저 물었다. 시인은 “흰머리가 이상하게 앞머리에만 몰려 있어 마치 부분 염색한 것처럼 보이지요. 책 읽을 때 앞머리가 내려와 눈을 찌르는 것을 막으려고 핀을 꽂았어요”라고 했다.

그는 가냘픈 얼굴과 얇은 입술의 소유자였으나 목소리는 여성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성으로선 드물게 쉰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15년 넘게 대학 강단에 선 탓이려니 했는데, 인터뷰 도중 30분이 멀다 하고 피우는 담배도 목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떠오른 시상, 학생들에게 먼저 말해
 
▶학교가 그렇게 먼 데로 이사가서 출퇴근 하느라 시 쓰실 시간이 있나요?
“개학하면 통 시를 못 쓰죠. 더구나 학과장을 맡으면서부터 학교 행정일까지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어쩌다 시상詩想이 떠올라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다 얘기해 버려요.”

▶아깝지 않나요?
“아깝죠. 그게 어떻게 떠오른 시상인데.”

▶학생들과 지내는 것은 재미있습니까?
“요즘 문예창작과 한 학년 80여명 중 절반이 대졸 출신이에요. 서울대, 연·고대 나온 사람도 있고, 그 인기 좋다는 경희대 한의대를 버리고 온 사람도 있어요. 문창과만큼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한 학과도 드물죠. 왜 문창과에 왔느냐고 물어보면 ‘뒤늦게라도 내 길을 찾겠다’는 답변이에요. 소설 쓰는 천운영, 윤성희, 정이현이 대학을 졸업한 후 자신의 길을 찾아온 사람들이죠. 졸업한 제자들이 인사동 같은 데서 모임을 하면 가끔 오라고 불러요. 세 번 초청을 받으면 한 번 정도는 가죠.”

▶대학 졸업하고 다시 온 사람들이 더 우수한가요?
“이론은 월등하지만, 창작이란 면에서는 똑같아요.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은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그렇게 길러낸 제자들이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는 것을 보면 어떻습니까? 시인이 좋아요, 소설가가 좋아요?
“제가 소설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소설가의 서사 능력이랄까, 글을 길게 끌고 가는 힘이나 능력이 부러워요. 하지만 시인은 시인을 존경하기 힘들어요. 시인은 시인이 제일 잘 알죠. 시인은 단지 고통을 같이 겪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대상일 뿐이죠. 미치지 않고 이제까지 살아왔다는.(웃음)”

▶작년 말부터 계간 《파라21》 편집위원을 맡으셨죠.
“그동안 잡지로는 크리스찬아카데미가 발행하는 《대화》, 시잡지 《포에지》 등에 관여한 적이 있지만, 이번만큼 열심히 일한 적은 없어요. 오래된 친구이기도 한 소설가 최윤 씨와는 잡지 기획으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전화하고 만나고 하죠. 문학잡지 편집일은 특집을 정하고, 필자를 구하고 하면서 한국문학의 지형도를 그려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파라21》에는 ‘젠더의 시각으로 읽는 한국문학사’ 시리즈를 연재중인데, 이번 가을호에는 제가 사회를 보고 대담 형식으로 꾸몄죠. 이제까지 씌어진 문학사의 틀을 뭉개고 새로운 시각으로 문학사를 다시 쓰는 큰 작업이죠.”
 
김혜순 시인 1992 ⓒ계간 시인세계

‘비평은 쓰지 마라, 시 망가진다’던 평론가 김현
 
▶선생님은 대학(건국대 국문과) 졸업 다음해인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선되어 등단했습니다. 그런데 1년 후 계간 《문학과 지성》에 시 '담배를 피우는 시체' 등 5편으로 재등단했습니다. 평론에서 바로 시로 바꾼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시인이 먼저 되고 싶었습니다. 돌아가신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님도 제 글을 보신 후 ‘비평은 쓰지 마라. 시 망가진다’고 하셨어요. 책으로 묶여 나오지 않았지만 평론도 가끔씩 씁니다.”

▶선생님에게 시란 무엇입니까?
“수백 번 들은 질문인데요. 저는 매번 다르게 대답합니다. 451번째 버전으로 표현하면, ‘순간적으로 나와 세상을 한번 잡아서 펼쳐보이는 작업’이고요. 452번째 버전으로 보면 ‘시의 삶이 나에게 왔다가 휘발해버리는 모습’이라고 할까요.(웃음)”

▶선생님 시 해설에 꼭 붙어다니는 ‘여성성’이란 무엇입니까? 시론집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2002년·《문학동네》)에서도 여성시인과 여성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하셨죠.

“기존의 언어로는 정의할 수 없죠. 이제까지 여성들의 정체성은 외부에서 다른 사람이 정해준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가적·허구적 정체성이죠. 너는 엄마고 아줌마고, 마녀고 등등. 하지만 여성의 정체성이랄 수 있는 여성성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자기 내부에 있는, 본래적인 여성성 말입니다. 제가 탐구한 것은 ‘여성은 언제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깨닫는가’, ‘여성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여성성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가’, 그리고 ‘여성 시인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제까지의 시의 말과는 다른 여성의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가’ 등입니다.”

▶시론집의 책머리에는 10여년 전 비밀결사와도 같았던 독서클럽 ‘문화권력 모임’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모임에는 조한혜정, 이상화, 이영자, 최윤, 김성례, 김영민, 박일형 등등이 참여했습니다. 어떤 모임이었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책을 읽고, 문화 전반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 철학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을 주로 다루었죠.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에 대한 것도 열띤 토론의 대상이 되었는데, 아마 그 자리가 여성성과 여성 시인에 관한 제 생각이 무르익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시인은 기존 언어를 잉태한 후,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 분만해야
 
▶선생님은 바리데기 설화를 많이 언급합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져 저승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자신이 밥하고 빨래하던 물을 이승으로 가져와 아버지의 병을 고친다는 이야기죠.

“《파라21》 가을호 대담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바리데기 텍스트’는 여성의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인 역할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텍스트는 남성 지배의 사회 구조 내부엔 도저히 그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어떤 언어도 방법도 있을 수 없음을 간파하고 자신의 몸을 던져 그 죽음의 세계를 여행하는, 그래서 스스로의 신체를 재위치시키는 언어를 개발한 역설적 서사입니다. 바리데기는 표면적으로 읽으면 효孝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텍스트입니다. 하지만 이 텍스트의 위장막인 숭고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서사의 줄기를 걷어내면 가부장제 속에 숨어 사는 여성들의 심리적 상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리데기는 그 속에 내밀하고 여성적인 서정성, 여성의 욕망기제들을 숨긴 텍스트로 읽어내야 합니다. 이 서사의 역설을 풀어내야만 여성의 무의식적 힘이 읽힙니다. 그러기에 바리데기 텍스트는 여성들의 욕망을 풀어낸 텍스트의 표본이기도 하고, 지배 장르(서사)에 반동하는 저항 장르(서정)를 개발한 표본이기도 합니다.”

▶여성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여성 시인’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여성 시인은 바리데기와 같은 어떤 상징적인 치름, 그 과정을 경험합니다. 이를테면 여성 시인에겐 스스로 인지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자신의 여성적 삶의 현실, 혹은 자신 스스로 구축하지 않으면 여전히 남의 현실로만 존재하는 현실을 인지하는 순간들이 존재합니다. 여성 시인은 그 순간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 그 병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을 홀연히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아픈 몸으로 죽음과 삶의 소용돌이를 치러내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여성 시인은 어느 순간 자신이 이 현실로부터 부과받은 정체성을 버린, 변형된 어떤 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중심으로부터 떨어진 주변부의 목소리를, 감정과 정서로 전하는 의미에서 시는 여성적 장르가 됩니다. 여성 시인, 즉 아픈 몸을 가진 환자는 사회적으로 큰 효용이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이 머물고 있는 사회의 구석진 곳, 그 배후의 자리에 시가 있고 그곳에서 발화하는 것이 시입니다.”

▶선생님은 평소 “여성의 시 언어는 남성의 시 언어와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에도 남녀 차별이 있나요?

‘봉긋한 가슴’이나 ‘앵두 같은 입술’이란 말을 예로 들어 봅시다. 이들 언어는 남이 나(여성)를 보는 언어이지, 내가 나를 보는 언어가 아닙니다. 언어에 있어 여성은 타자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이 여성 시인에게는 모국어가 아니게 된 거죠. 자연히 기존의 서정시에는 거부감이 생깁니다. 여성 시인은 기존의 언어를 잉태한 후 이를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 내뱉어야 합니다. 결국 여성의 언어는 이제까지 밖에서 주어졌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반동으로부터 터져나옵니다. 여성의 언어는 본래적으로 위반의 언어인 것입니다. 여성의 시는 기존의 서정시에 대한 고정관념과 관습적 인식에 대항하게 됩니다.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과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호명해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시 잉태하고, 분만해야 하는 것이죠.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딸과 공원에서 1996. ⓒ계간 시인세계
시 쓰기는 자신 속의 어머니가 말하는 것을 받아쓰는 것

 
▶선생님의 생각은 서양의 페미니즘이나 여성 운동과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페미니즘도 다양한 방법으로 발언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사회적·정치적 의미의 페미니즘은 아닙니다. 시는 시의 방식으로 발언해야죠.”

▶선생님이 즐겨 쓰는 표현인 ‘몸으로 시 쓰기’는 무슨 뜻입니까?

“시쓰기는 시인이 어머니가 되어 아픈 출산을 하는 과정입니다. 이때 어머니는 시 쓰기의 생동이 터져나오는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그러나 스스로 근원인, 비유적으로 말하면 물의 뿌리를 품은 계곡과 같은 것입니다. 시쓰기는 자신 속의 어머니가 말하는 것을 시인 스스로가 받아쓰는 것입니다. 시는 결국 몸 전체로 쓰는 것입니다. 해산할 때의 여자를 보세요. 여자는 몸 속에 있는 죽음과 싸우는 것처럼 비명을 지릅니다. 분만은 고통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비명으로 시작됩니다. 여자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소리칩니다. 시 창작은 결국 스스로의 시 속에서 어머니 되기를 구현해 나가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시인은 자신의 자궁 속에 한 편의 시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거죠. 잉태와 출산 속에서 어머니 시인은 쾌락과 고통을 자신의 죽음 속에서 힘껏 껴안습니다. 시는 단순한 재미가 아닙니다. 지금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것, 언젠가는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 내부에 생긴 시를 출산하지 않고 어떻게 배기겠습니까.”

▶선생님의 시가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나온 탓인지, 너무 어렵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1997년 제16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시집 『불쌍한 사랑 기계』의 심사평을 보면, “온갖 상상력을 자극한다” “묘한 매력과 고통스런 충격으로 다가온다”라는 찬사가 있는가 하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며 곤혹스러워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심사위원이 어렵다고 하면 일반 독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아무리 거창한 내용을 담았더라도 일반 독자에게 ‘암호’ 같은 시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 시가 어렵다고 난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어떤 기자는 저에게 ‘자신의 뇌를 고문하기 위해 지은 시 같다’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그림의 경우 많이 알수록 그 내용을 감상할 수 있는 폭과 깊이가 정해지잖아요. 하다못해 운동경기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있잖아요.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올해로 25년 동안 시를 써왔습니다. 거기에 걸맞는 내용을 갖추어야죠. 오히려 요즘 쓰는 제 시들은 너무 쉬워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러다가 이제 시는 그만 써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김요일 시인이 물었다) 시가 쉬워진다는 것이 나쁜 건가요?

“제 말은 제 시가 사물의 정수를 포착하지 못하는 대신 말이 풀어지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뜻입니다. 시의 영토는 엄청나게 넓어지고 변화하고 있습니다. 시의 지형도가 바뀌면서 시가 영화나 소설에 스며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다가 앞으로 시가 다른 장르간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 급기야 시 장르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더 긴장해서 시를 써야죠.”
 

가족 모두가 장르가 다른 예술 활동
 
▶남편(이강백,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56)은 희곡을 쓰시고, 따님(휘재)은 미술을 전공하고, 온 집안이 예술의 한 분야씩 맡았네요.

“남편은 대학 졸업 후 평민사라는 출판사에서 근무할 때 처음 만났습니다. 출판사 여직원과 필자 사이였죠. 당시 『이강백 희곡전집』을 준비중이었어요. 전두환 시대라 서울시청에서 책 내기 전 검열을 받았는데, 「개뿔」이란 작품은 대사를 너무 많이 지워 책의 상당부분이 검은 잉크 투성이였죠. 이 작품을 실제로 무대에 올렸을 때 대사가 거의 없어 거의 무언극이 되기도 했죠. 이런 우여곡절 끝에 책을 내면서 친해졌어요.”

▶딸 이휘재(21)양은 고교 시절 개인 전시회를 열어 천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죠. 따님이 엄마의 시를 좋아하나요?

“언제인가 영화 <편지>에서 황동규 선생님의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에 있는 「즐거운 편지」가 낭독돼 시집이 많이 팔린 적이 있어요. 딸은 ‘엄마 시는 괴기영화에서 낭독하면 어울릴 텐데’라고 하더군요.(웃음) 엄마 시를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읽기는 읽나봐요. 딸은 미국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내년에 졸업합니다.” 

저녁 10시쯤 저녁을 마친 우리는 인근의 술집 ‘섬’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사하면서 전통주를 몇 잔 마신 시인은 술집에선 맥주를 시켰다. 김요일 시인과 필자는 소주잔을 기울였다.
술자리에서는 건강 얘기가 나왔다. 작가는 요가로 건강관리를 한다고 소개했다. 15년 전에 시작했으니 이제는 ‘고수’의 단계에까지 이르렀을 법하다. 요즘에는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까지 집에서 몸을 풀면 땀에 흠뻑 젖는다고 했다. “땀을 흘리면 내 몸을 100%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시인은 몇몇 지인들과 영화 보는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두 번 영화를 본다고 했다. 화가 윤석남, 사진작가 박영숙, 영화평론가 권은선, 화가 정정엽, 김영옥 이대 여성연구소 연구위원 등이 멤버다.

영화 보기 멤버 중 하나인 페미니즘 작가 윤석남은 김혜순 시인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10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윤석남 개인전에 전시된 ‘김혜순’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한복 차림의 여인이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자신의 빨간 심장을 꺼내 보여주는 모습으로, 그 심장에는 대못 수십 개가 박혀 있다. 그것도 전시장 지붕에 매달린 채.

“자신의 이름이 붙은 여인상이 그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전시돼도 괜찮느냐”는 질문에 시인은 “재미있지 않나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최홍렬   1964년 충북 음성 출생. 《조선일보》 수도권부·문화부(출판·문학담당)·사회부 기자를 거쳐 현재 문화부에서 문학을 담당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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