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도둑?
文村..윤덕규
추석을 맞아 일찌감치 차례와 성묘를 마치고, 오후 세시쯤 아이들과 함께 처갓집으로 떠났다.
처가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양주군 은현면이라 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지난달 팔순을 앞둔 장모님은 잠시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원인은 피가 부족하다는 이유, 피가
부족한 것은 분명 어디선가 출혈이 있을 터..... 진찰결과 위에서 출혈이 있단다.
일요일을 이용해 잠시 장모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을 찾았던 터라 자세한 진단결과를 받지 못
한 채 돌아 왔었고 다음날 처남댁으로 부터 전해들은 담당 의사의 정확한 진단 결과는 위암의
소견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말이 워낙에 연세도 있고 체력이 떨어지신 터라 수술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단다.
병원에 누워 계시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성화에 못 이겨 집으로 퇴원을 했는데 마침 추석도 얼
마 남지 않고 해서 이후의 문안을 오늘로 미루어 두었었다. 궁금한 마음에 도착하자마자 장모
님의 상태를 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우리 차가 마당에 도착하자마자 제일먼저 나오셔서 우리를
맞이하신다. 안도의 기쁨도 잠시, 한눈에 보아도 많이 수척 하신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아버지가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시고 이제는 양가를 통틀어 이제는 장모님
한 분 만이 생존해 계시니 연민의 마음이 더욱 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처가에는 딸이 하나뿐이라 나는 언제나 처가 에서는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사위사랑은 장모
라는 말을 몸소 실감하며 사는것이 다름 아닌 바로 나다. 어려운 시골 살림에 대접이라야 뻔한
것이겠지만 늘 마음 만큼은 융숭함을 알고있다. 어찌 보면 하는 것도 없이 늘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음에 때론 미안한 마음마저 들 때가 여러 번 이다. 그러한 마음에 어찌 잘 해보고 싶지
만 마음을 표현으로 내 비추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아 속으로만 앓이를 하며 산다.
그렇지 않아도 작고 마르신 체형인데, 퇴원 후 죽으로 끼니를 이으시는 장모님의 몸은 참으로
보기에 애처로울 정도로 왜소하고 수척해 지셨다. 그런데도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를 않고 부지
런히 움직이고 이런저런 집안 일을 해 내시니 주변의 자식들은 늘 그것을 걱정 하면서도 딱히
말릴 수도 없어 마음만 아파할 뿐이다.
다음날 우리가 돌아올 때에도 언제 그렇게 준비 하셨는지 된장, 간장, 고추장에 이런저런 야채까
지 바리바리 봉지에 담아 행여 빼놓고 그냥 떠날까 싶어 차옆에 가지런히 줄지어 놓으셨다. 그러
고도 뭐가 부족한지 이리저리 부지런히 들밭과 창고를 드나들며 뭐 더 싸줄것 없는지를 살피시는
장모님을 보며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편치않은 몸으로 하나뿐인 딸을
위해 이토록 지극정성이신 장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며 딸은 도둑 이란 말이 결코 그냥 생겨
난 말이 아님을 오늘에야 실감할 수 있었다.
내 짐작으로 이제 장모님의 여생도 그리 오래지는 않을 듯 싶다.
세월의 흐름 앞에 영원한 것이 있겠냐마는 한 분 남은 장모님 이라도 우리 곁에 좀더 머물러 주셨
으면 좋겠다. 모두가 장성하여 품안에서 벗어난 자식이지만, 스스로의 삶에 부모님의 돌봄은 필요
없는 중년의 자식들 이지만, 우리가 받은 사랑을 다 돌려드리지 못했기에,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
로 부모님에게 드릴 사랑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철없는 자식들 이기에, 이제 한분 남은 장모님의
끈이라도 붙잡고 싶다. 철들어 부모님 사랑을 느낄 때면 부모님은 우리곁에 없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세상은 돌아 가는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 우리들 차를 눈에서 사라질 때 까지 바라보는 어머님을 나는 보았다.
어두웠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그 모습을 보았다.
어머님 좀 더 사세요. 오래오래 사시라는 말씀은 차마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생이 허락하는 동안만큼은 건강하게 사세요. 꼭이요.
어머님 사랑합니다.
(2009.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