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없는 방송
(방송의 홍수 속에 과연 진정한 시청자의 권리는 있는가?)
文村..윤 덕 규
많은 사람들이 하루일과중 적지 않은 시간을 텔레비전시청으로 보내고 있으며 텔레비전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중요한 스포츠중계가 있는 날이거나 각자 별다른 야외활동과 행사가 없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는 시간은 더욱 늘어나고 채널은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 사실이며, 최소한 나의 경우는 집에서 쉬는 시간을 갖는 날이면 쉴 새 없이 채널을 가지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는 한다.
요즘은 다양한 전문채널의 증가로 약간의 비용만 지불하면 각자의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시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발달되어 있으니 텔레비전은 하나의 취미생활과 정보습득의 좋은 매체임을 달리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들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 낚시, 스포츠, 등산, 교육, 쇼핑, 종교, 성인방송, 뉴스, 코미디, 요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채널들이 쉴 새 없이 방송을 송출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실시간으로 휴대폰 문자까지 자막형태로 주고받을 수 있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하지만 별도의 유료 서비스나 케이블을 설치하지 않은 우리 집의 경우 공중파 방송이 시청권의 전부이며 개인적으로는 뉴스 프로그램과 특집으로 편성된 연속성이 적은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종류를 즐겨 시청하는 편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시간에는 아이들의 핀잔이나 와이프의 잔소리는 나의 채널 소유권을 쟁탈해 가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허다하지만 인기 있는 연속극이 방영되는 시간에는 상황은 이와 정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텔레비전은 경제적 사정과 시간적 여유가 넉넉하지 않은 보통사람들의 유일한 여가수단인 경우가 많으며 전업 주부들의 직장 동료이자 실업자의 근심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아주 유용한 보편화된 대중 매체이다. 물론 상당부분 PC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유용한 매체가 나의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들고 가끔 허탈한 마음을 들게 하며 어떤 때는 화를 치밀게 하는 경우가 있어 주변 사람들과 이러한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그러한 마음을 느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 선택에 의한 유료 위성 서비스, 케이블 방송 등 특정 목적의 방송이야 거론의 필요가 없겠지만 공중파 방송, 스스로들 말하는 소위 공영방송의 최근 방송제작 행태에 대해서는 진정한 시청자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하고 제작 하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방송은 주말 시간에 스스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시청자의 의견을 모니터링하여 스스로 자구책을 찾는 것 같은 모션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짚어 내지를 못하고 있다.
시청률을 의식하다 보니 출연자의 면면이 지나치게 몇몇 인기연예인에 치우쳐 어떤 때에는 같은 시간에 한 인물이 이 방송 저 방송에서 동시에 출연하여 방송을 진행 하는가 하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이름으로 인기 연예인 몇 명을 그룹으로 만들어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사담으로 방송시간을 채워 송출하는 것이 일반화된 프로그램도 상당수 있으며, 심지어는 방송 중에 쓸데없는 말과 행동으로 시간을 끌어 방송분량에 맞추는 것을 보고 자기들끼리 “야~ 쟤는 방송을 아네!” 라며 히히덕거리는 것을 그대로 방송으로 내보내는 경우도 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 아닌가? 출연자들 간의 호칭이 시청자를 의식하지 않고 무시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사석에서나 부르는 경어가 빠진 이름호칭, OO야, OO형(님), 별명 부르기, 저속한 언어를 사용한 호통, 함께 출연한 출연자에 대한 지나친 비하발언 이나 지나치게 높여 부르는 말 등, 일일이 지적하기가 벅찰 정도로 철저히 시청자를 무시하고 출연자들 위주로 방송이 제작되어지고 있음에도 누구하나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치 않고 있으며 방송심의위원회 또한 그 역할을 하지 않고 있으니 심의위원들 요즘 뭘 먹고 사시는지 의문이 갈 뿐이다.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방송규제라는 항의에 한걸음 물러선 것이라면 이 또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니 매일반이다.
또한 상당수 프로그램을 외주로 제작하면서 발생되는 문제점도 있으니 외주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 너도나도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그야말로 잘 나가는 연예인을 섭외하기 위해 마치 경매라도 하듯 개런티를 높여가며 방송의 내용에 신경 쓰기보다는 스타확보에 혈안이 되다보니 인기연예인의 출연료가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뛰어올라 방송 제작비 중에서 특정개인의 출연료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공개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스타급 연예인은 스스로의 인맥(일명, 라인)을 키우기 위해 높은 출연료와 더불어 자기가 지명하는 연예인을 출연시킬 것을 조건으로 내세우다 보니(일명, 옵션) 제작비는 정해진 상태에서 스타확보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되고 따라서 나머지 부분은 그야말로 열악하기 짝이 없을 것이고 어찌 보면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은 신경 쓸 처지가 못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스타 한명의 출연료가 제작현장에서 조명과 마이크 등 소품을 챙겨 그야말로 땀띠 나게 뛰어다니는 스텝들의 몇 명분 인건비를 받고 있는지도 비교해 볼만한 일이 아닐까?
국적이 애매모호한 ‘리얼 버라이어티’ 라는 말로 포장하여 진열 하지 말고, 취향에 맞지 않으면 다른 채널 보면 되지 않느냐는 말로 시청자들을 내동댕이치기에는 그 문제의 심각성이 지나친 위치에 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만들어진 스타를 경쟁적으로 섭외하려 하지 말고 참신한 신인을 발굴하여 양성하는 것도 방송사나 프로그램 제작자의 사회적 책임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하여 스타의 층을 두텁게 함으로써 제작자간의 지나친 경쟁을 줄이고, 개런티 비율을 줄여 프로그램의 내용을 충실히 하는 것은 시청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신인 발굴 시에도 지나친 소심함은 시청자들을 실망에 빠뜨릴 우려가 크다. 그 한 가지 예로, 스타의 대물림을 지적하고자 한다.
인지도가 높은 스타의 자녀나 가족을 등장시켜 모험을 최소화 해 보려는 소심함은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물론 재능을 타고나 잠재능력을 소유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실망감은 훨씬 클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한다.
프로그램을 보며 웃으면서도 왠지 뒷맛이 씁쓸해 허탈해하는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방송사나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진정으로 모르고 있는 것일까? 몸값에 비례한 내용 좋은 프로그램을 이끌어갈 진정한 스타는 없는 것일까?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도 중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송사나 제작에 임하는 관계자들이 방송의 공적기능을 잊지 말고 공중파를 통해 방송되는 프로그램이 우리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조금 더 심도 깊게 생각하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2009.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