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44·소설가)씨는 요즘 최고 인기 작가다. 써내는 장편마다 베스트 셀러가 되고, 몇몇 책은 70, 80만 부씩 팔렸다. 그녀를 인터뷰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렵게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면 '정지' 중이고, 출판사에 부탁을 하면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런데 마침 공지영씨가 대구 계산성당에서 특강했다.(11월 29일) 특강 앞뒤 자투리 시간과 그녀가 정한 방식의 휴대폰 통화(이쪽에서 문자를 보내면 저쪽에서 전화를 내는 방식)를 통해 이야기 나눴다.
작가 공지영은 겸손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았다. 필요이상의 예의를 갖추지 않았고, (팬들과 기자들이) 사방에서 질서 없이 쏟아내는 질문에 질서 있게 답했다. 고개만 끄덕여도 좋을 사소한 질문에도 자기의견을 내놓았다. 강연에 앞서 칼국수로 저녁을 후닥닥 먹었는데, 식사 중에도 팬 사인과 대답을 꺼리지 않았다. 누군가 스테인리스 금속 물 잔에 따라준 소주도 거리낌없이 받았다. 소주 한 병 마시면 잠 잘 잔다고 했다. 최대량은 얼마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지영 소설의 화법은 날카롭다. 세상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댄다는 느낌이다. 최근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역시 따뜻함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진행 방식은 여전히 '으르렁거림'이다. 그래서 물었다.
'아버지가 (공지영씨를) 사랑해주셨나요?'
"그럼요. 많이 사랑해주셨죠."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요?'
"아뇨, 사람들이 놀랄 만큼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어째서 남성에 적의를 품고 부성애를 외면한다는 말인가? 자꾸 캐묻기 민망했지만 휴대폰 통화 때 또 물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세요?'
"우리 집안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으세요? 저는 평범한 중산층 집안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위 형제들과 좀 시간을 두고요. 그래서 과분하리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보통 사람들 이상으로 말예요."
공지영씨는 "사회에 나오고 보니 내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가정에서 자랐는지 알게됐다. 그런 가정에서 성장한 때문인지 (세상에 편재한) 가부장적 질서와 폭력성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저항하는 것 같다."고 했다.
◇ 베스트 셀러…얼마나 벌었나?
공지영씨의 소설을 읽다보면 '세상은 햇볕 좋고 바람 시원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분통 터진다.'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마치 소풍 가기로 한 날 비 내리는 것에 분개하며, '사람을 기만한 야비하고 악독한 날씨에 당장 수갑을 채워야 한다!! 경찰은 어디 가서 뭘 하는 거냐?'고 울부짖는 것 같다. (그의 소설이 통제하기 힘든 세상의 속성을 상대로 분개하는 것 같아 막막하게 읽힌다는 말이다. 공지영이 소설 속에 그려내는 인물이나 상황들, 심지어 3번에 걸친 그의 결혼도 '어떤 이상적인 틀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다가서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인터뷰 시간은 부족했고, 마음은 급했다. 그래서 멍청한 방식으로 질문하고 말았다.
"세상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환상 갖고 있죠?"
"아뇨, 전혀요!"
40대 중반의 여성이, 그것도 소설을 몇 권이나 쓴 영리한 작가가 "그럼요. 세상은 꽃피고 새들 노래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슬퍼요, 흑흑."이라고 답할까. 멍청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세상을 보는 공지영의 시각을 직접 듣기는 틀렸다.
공지영씨는 소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수줍음을 많이 타기 때문에 그런 말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꽃을 보며 좋아하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다.
베스트 셀러 작가, 그만큼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다. '안 쓰고 모았다면 대구에 작은 빌딩 하나쯤은 샀을 것'이라고 농담했다. 그러나 사실은 '한푼도 없다.'고 했다. 책 써서 막내를 대학까지 공부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도 했다. 그 돈을 다 어디에 썼을까? 그녀는 많이 주저한 후에 '불우 이웃돕기와 여러 단체 지원에 썼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물었지만 '(후원이나 기부는) 자신이 살고 싶은 방식이며, 그런 일을 시시콜콜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 모성 강조·부성 외면 어째서?
공지영씨는 3번 결혼하고 3번 이혼했다. 실패해본 결혼을 2번이나 또 감행한 것이다. 공지영은 끝까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버리지 않은 사람일까? 아니면 결혼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갖고 있을까. 그녀는 결혼제도에 장점이 많다고 했다. 인간에게 안정감을 주며 신뢰를 확인하게 해주는 제도라고 했다. 그는 결혼에 대해 '다시는 안 하겠다, 혹은 꼭 다시 하겠다.'는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고 했다.
공지영씨는 3번이나 결혼했던 이유로 '안정감과 신뢰'를 들었다. '그럼 3번이나 이혼한 이유는 뭔가요?'
"노 코멘트."
공지영의 초기 베스트 셀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세 여자의 삶을 통해 여성이 살아가기에 우리사회에 얼마나 많은 굴레가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남성의 이기와 폭력이 존재하는 지 말하고 있다. '무소…'뿐만 아니라 그의 단편들에서도 여성을 억압하고 농락하는 남성들이 등장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등장하는 남성은 '동생을 강간하는 사촌오빠'거나 '술주정뱅이며 처자식에게 위협을 가하는 아버지'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공지영씨 눈에 비친 남성은 죄다 '인간말자'들이다. 또 '우행시'의 남녀 주인공에게 부성애(父性愛)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없어도 문제될 게 없다. 두 주인공의 일탈을 촉발하는 것은 '모성애 상실'이다. 공지영은 어째서 남성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부성애를 철저히 외면하는 걸까?
"부성을 부정하거나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 한번도 부성을 부정한 적은 없다고 생각해요. 부성도 중요하죠. 다만 인간에게 가장 큰 상처는 가장 가깝고 밀접한 사람으로부터 받을 때 가장 치명적이에요. 바로 어머니죠. 사형수의 90% 이상이 엄마가 없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 해요." 그녀는 물론 가부장적 사회질서에 강한 저항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 생각은 없는가? 공지영씨는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글보다 이제는 성숙한 차원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 '우행시'와 사형제 논란
공지영씨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수를 다룬 소설이다. 사형수와 사형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내면은 '인간에 대한 예의 혹은 사랑' 그리고 '모성'에 관한 이야기다.
공지영씨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자신이 변했다고 했다. "소설만 딱 쓰고 빠지려고 했어요. 그런데 요즘도 사형수 면회를 다녀요." 그녀는 이 소설을 쓰기 전에 사형수나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저런 놈들은 죽여야 해'를 입에 달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고 했다. 자신은 신앙인으로 거듭 났으며 회개와 용서야말로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했다.
1996년, 1997년까지 (종교적) 냉담자였던 그녀는 (기독교를 두고) '참 웃기는 종교야. 죄 실컷 짓고 잘못했습니다, 한마디면 다 용서된다고? 웃긴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참회가 얼마나 어렵고 소중하며, 용서가 얼마나 지순한 가치인가를 근래에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스스로 '우행시는 신비한 소설이며, 자신은 거듭났다.'고 했다. 인터뷰와 강연, 칼럼 부탁은 거절하지만 '사형제 반대 가두집회'에 참석하고, 사형제 폐지관련 모임에도 열심히 참가한다고도 했다.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은 독자들 중에는 사형제 찬성입장에서 반대입장으로 돌아선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형수는 동료의 범죄까지 뒤집어쓰고 사형 선고를 받은 것으로 묘사된다. 혹시 이 소설을 읽고 사형제를 반대하게 된 독자는 '사형제가 (죽을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 대한)사회적 살인 혹은 자살방조'로 인식한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마땅히 사형감인 인물이 아니라 죽을죄를 짓지도 않았으며, 불우하게 자란 한 착한 청년을 사형제라는 이름아래 법률이 살해하는 게 '사형제'라고 인식하지는 않았을까.
"그 점(주인공이 동료의 범죄까지 뒤집어 쓰게 한 설정)에 대해 고민 많이 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목숨을 끊는 제도에 대해 의심하고 주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그러나 오심의 문제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오심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사형수 중 10%가 넘는 사람이 오심임이 판명됐고, 제가 만났던 사형수 중에서도 두 사람은 여전히 범죄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 대학 때 데이트 신청했다 퇴짜
공지영씨는 소설뿐만 아니라 미모로도 유명하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공지영씨의 소설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로 그녀의 미모를 들기도 했다. 한 중앙 일간지는 그녀가 대학 때 학과 선배를 좋아한 적이 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프로포즈 해 본 적 있어요?"
그녀는 정식으로 프로포즈 해본 적은 없으며 대학교 1학년 때 남학생에게 '저녁 먹자'고 말했다가 퇴짜 맞은 적은 있다고 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없었다는 말일까?'
"가만히 있어도 남자 쪽에서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해와서 내가 먼저 말할 기회가 없었어요. 하하하."
공지영씨는 누군가가 길가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게 싫다고 했다. 그래서 공개석상의 외모와 평소외출 때 외모가 전혀 다르다고 했다. 정해놓은 가명도 있다고 했다.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가명으로 통한다고도 했다. 가명이 뭐냐고 3,4번이나 물었지만 끝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왜 싫을까?'
"보통 사람 입장에서 소설을 써야 하는데, 특별대우를 받기 시작하면 보통사람들 이야기를 쓰기 힘들어요. 물론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요."
공지영씨는 '이번이 마지막 인터뷰'라고 했다. 인터뷰와 강연에 불려 다니느라고 작가노릇을 계속하기 힘든 지경이라고 했다. 올 한해는 사형제 폐지와 관련해 많은 일을 했고 의미도 있었지만, 이제 창작에 몰두해야 할 때라고 했다. 당분간 인터뷰는 물론이고 바깥 활동도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뭐랄까.
공지영씨는 착한 사람 같았다. 그녀를 직접 만나서 느낀 게 있다면, 그녀는 세상이 원래 '더럽게 생겨 먹었으며, 그 더러운 외부 환경에 적응해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터득한 요령꾼' 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물대'를 몰라 겁없이 강가에 나와 노는 아이라는 말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그녀의 책 제목처럼 '인간에 대한 예의' 혹은 '애정'이 가득한 사람으로 보였다. 세상과 사람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으니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기 아이의 사소한 잘못에도 부모가 분노하는 것은 아이에 대한 애정이 넘치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작가 공지영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는 맑고 아름다운 사람임이 틀림없는 듯 하다. 외모가 아니라 그 생각과 태도가. 그래서 어느 순간 갑자기, 지금까지 그가 써왔던 수많은 작품들, 그러니까 내가 결코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분노를 표하곤 하던 그의 작품들이 어느 순간 이해되기 시작했다면 지나칠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전에 작가 공지영을 두고 '이 따위 것을 주제로, 이 따위 흔해빠진 일을 새삼 뭐라고, 소설씩이나 쓰느냐?'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가 자선사업에 관심이 많으며, 불우 이웃을 위해 호주머니를 털어낸다는 사실은 충격이기도 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애정, 그리고 재산을 쏟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돈과 시간이 썩어나는 사람이라도 쉽지 않다. 혹여 누군가가 '그 정도 재산이 있는 사람이 뭘...' 이라고 말한다면 그가 단 한푼도, 단 한시간도 타인을 위해 써본 적이 없는 사람임을 증명할 뿐이다. 게다가 공지영은 소설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다. 작가라는 직업은 얼마나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인가.
◇ 공지영은…
1963년 서울출생.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1988년 창작과비평 '동트는 새벽' 등단. 수상-2006년 제9회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21세기 문학상, 한국소설 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등. 작품-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별들의 들판,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상처 없는 영혼,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봉순이 언니, 인간에 대한 예의, 착한 여자, 고등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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