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는 동북쪽으로는 주금산, 서리산, 축령산, 운길산, 서쪽으로는 운악산, 수락산, 불암산에 에워싸여 있고, 그 가운데 천마산이 우뚝 솟아있는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녹색도시이자 유구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한반도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고장이다. 호평, 평내 선사유적과 수석리 토성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강을 중심으로 선사문화를 꽃피운 곳이기도 하며,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으로 고리국에 속하였다가 삼국 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가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던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고구려 때는 골의노(骨衣奴)라 불리웠고, 통일신라 때는 황양(荒壤 :현 진접, 진건)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인 936년 <고려사>에 "후백제 견훤에게 양주를 식읍으로 주었다"는 기록과 함께 지방 행정 구역 명칭으로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내려 왔다. 이와 같이 한반도 역사의 중심에 서있던 관계로 지명이 여러 번 바뀌었던 남양주시는 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군을 통합하여 신설된 것이다. 남양주시의 대표적인 역사 인물로는 조말생과 다산 정약용, 석실선인 김상헌이 있고, 근 현대에 와서 이석영(독립운동가), 김용기(가나안 농장 창시자), 장욱진(화가) 등이 있다.
향토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반만년이라는 유규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각 고장마다 고유한 향토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향토문화유산이란 곧 그 고장의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정신문화이다. 정신문화란 그 고장의 뿌리이자 조상의 얼이기 때문에 정신문화 계승없이는 고장의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정신문화 계승없는 발전은 뿌리없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고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향토문화유산을 계발, 보존, 전승하여 향토정신문화의 동질성으로 지역민심을 대동단결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조상들의 훌륭한 정신문화유산을 일깨워주어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이 문화원의 존재 이유이다. 1982년에 개원한 남양주시 문화원은 남양주시민들의 자존심이며 그 자존심 중심에 서있는 것이 바로 문화원 이용복 원장이다. "남양주시는 오래 전부터 한반도 역사의 중심에 서있던 관계로 수많은 향토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천마산을 중심으로 축령산, 불암산, 운길산이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고장이지요. 이러한 역사의 중심에 서있던 남양주시가 향토문화 계승,발전없이는 진정한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향토문화 계승, 발전은 원장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 기관장이나 유지 및 문화원 관계자들의 유기적인 협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지요." 제 9대 원장으로 취임한 이용복 문화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지역 관계자들의 상호 협력과 참여를 피력했다. 개원 29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문화원은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문화원장이란 본분을 망각한 정치적 논리에 편승한 일부 전임 원장의 문제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향토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지역 기관들의 의식이라고 이용복 원장은 말했다.
삼봉두레농악 복원
남양주시의 대표적인 정신은 다산 정약용의 실학사상에 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세기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입니다. 실학자로서 다산 선생의 사상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한 인물이라 평가할 수 있지요. 다산 선생이 조선 최고의 실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개혁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산 선생은 가장 이상적인 관료였다고 한다. 목민심서> 등 저작에서 엿보이는 그의 정치관은 기본적으로 민본(民本)이었다는 것이다. 왕정 시대에도 주민 자치가 실현되기를 소망했고, 소박하게나마 민주주의를 지향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고 이용복원장은 말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다. 다산 선생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조선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결국은 오랜 유배 생활 끝에 고향인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유배생활 동안 <목민심서>, <경세유표>등 많은 저서를 남겨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유적지 내에는 다산 선생의 생가인 여유당과 선생의 묘,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이 있다. 다산문화관에는 많은 저서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으며 다산기념관에는 수원성 축조 과정에 쓰였던 거중기, 녹로 그리고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 다산 초당의 축소 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다. 문화원은 해마다 '다산문화재'를 열어 선생의 실학 정신을 기리고 있다. 또한 문화원은 조안면 삼봉리 지역의 전통 민속놀이인 삼봉두레농악을 복원했다고 한다. 사라져가는 고유의 전통민속놀이의 발굴과 보존,복원 및 전승을 위해 노력한 결과 2009년 12월 20일 오후 북한강변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삼봉농악전수회와 함께 복원, 재연공연을 연 것이다. "조안면 삼봉리에 전해내려 오던 삼봉두레농악이 전수자들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그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던 것을 기초자료 조사와 수집 및 악보의 일부를 채록하는데 2년여 걸렸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되도록 복원을 했지요. 존폐 위기에 놓인 우리 고유의 전통민속놀이 농악을 복원, 재연해 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향토문화유산 발굴에 시금석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문화사업에는 무엇보다도 행정적인 협조가 절실하다고 봅니다." 그밖에 남양주시에 전통민속놀이인 퇴계원 산대놀이가 있다. 지난 1990년대 말 60여년 만에 복원되어 남양주시 다산문화제에 출연, 공연 및 단오 정기공연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서 초청 공연을 갖는 등 해마다 7~8회의 활발한 전승 공연을 통해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재단이 설립되어 문화원의 영향밖에 있음을 이용복원장은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천마산 산신제의 목적
문화원에서는 천마산 인근 마을의 산신제를 조사하다 마을 단위에서 벗어나 남양주시 전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고, 시민 및 청소년들에게 전통 민속 보존의 중요성을 교육시키고자 매년 천마산 산신제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남양주시는 명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마을마다 산신제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민속신앙인 샤머니즘에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통민속행사를 이어오면서 마을 주민들의 화목 및 단결을 도모하고, 풍년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마을 공동의식의 축제로 승화되는 민족 고유의 혼이 담겨있음을 주지시키려는 민속행사였습니다." 이러한 전통민속신앙에 관해 마을마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학술적으로 조사 연구하여 체계화하고 또한 종교적 개념이 아닌 주민 대동 한마당 축제로 개발 육성시켜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행사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이용복 원장은 천마산 산신제 행사 목적을 설명했다. 농촌과 도시가 혼재한 남양주시에는 아직도 읍, 면, 동 각 마을 마다 이와 같이 산신제나 성황제, 터주고사 등을 지내고 있으나 민속조사연구소 등 경기도 편찬지에도 기록되지 않고 있어 향후 시지편찬사업과 맞물려 전통민속 보존차원에서 조사 연구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이용복원장은 말했다. 이밖에 전통문화행사로 기릉제(배릉의식)가 있다. <국조오례의>의 배릉의식에 의하면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반드시 건원릉 이하 부왕 및 모후의 산릉에 참배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조선 왕조 5백년 동안 이 배릉의식은 국가적 의례뿐만 아니라 왕이 친히 거행하는 점에서 그 의례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남양주시에서는 전문가의 고증을 받은 어가 행렬 재현과 백일장, 학술대회, 산릉제례 등의 행사를 열고 있다.
문화원 주요행사 다산 문화제
실학창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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