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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별 별칭에 관한 이야기

은빛사연 2022. 1. 3. 07:53
◆[최기영의 세상이야기]211.성현들의 지혜로움이 듬뿍 담긴 나이별 별칭

돌아오는 10월 2일은 김동길 박사님께서 88번째 생신을 맞이하시게 된다. 88세를 일러 미수(米壽)라 하는데 미수란 단어에 미가 ‘쌀 미 米’자를 쓰는 이유는 농부가 모를 심어 추수를 할 때까지 88번의 손질이 필요하다는데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米’자를 파자하면 ‘八’자가 둘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하여튼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말처럼 사람이 보통 칠십을 살기가 어려운 것인데 88세를 정신이 또렷하게 산다는 것은 하늘이 내려 준 큰 복임이 틀림없고 스스로의 무단한 자기관리의 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88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 및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것과 더 나아가 김 박사님의 방송과 강연에는 절대 대본이 없다는 것이 이 분만의 유일한 특징이다. 익히 알고는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십 수 년 전 대통령 선거 찬조 연설 차 모시고 간 KBS 방송국에서의 일인데, 프라임타임의 생방송이었고 당시만 해도 대선찬조 연설이 처음 생겼었고, 해서 PD나 방송 스테프들이 외려 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전당한 분장을 하고 수행한 우리들과 가볍게 커피를 한 잔 마시는데 방송시작 3분전을 알리는 싸인이 났다. 그러자 여느 방송 때처럼 FD가 박사님께 다가와 “이렇게이렇게 하셔야 됩니다.”라며 생방송용 오리엔테이션(?)을 하다가 야단을 맞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이후 김 박사님의 심장은 그야말로 강심장이며 당시의 FD는 나름 김 박사님을 거들고 챙기는 방송전문가로서의 행동이었으나 그런 사전행동이 김동길 박사 특유의 가장 자연스런 액션을 방해하는 행동이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최근의 방송을 본 나의 지인들은 노익장을 과시하신다며 훨씬 젊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저력이 있다며 혀를 내두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런 분의 장수를 기원하는 것은 측근으로서의 도리를 떠나 조국을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늘 좋은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시는 유일무이한 국보급 역사의 산증인을 오래 뵙고 싶은 다 같은 마음에서의 바람인 것이다.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에는 연령을 달리 부르는 단어들이 여럿 나오는데, 지학(志學)ㆍ이립(而立)ㆍ불혹(不惑)ㆍ지천명(知天命)ㆍ이순(耳順)ㆍ종심(從心)이 그것이다. 공자는 만년에 이르러 자신의 사상과 인격의 발달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 志于學 / 오십유오이 지우학),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 삼십이립),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 不惑 / 사십이 불혹),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 知天命 / 오십이 지천명),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 耳順 / 육십이 이순),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 從心所欲 不踰矩 / 칠십이 종심소욕 불유구).”

‘지학(志學)’을 글자대로 해석하면, ‘학문에 뜻을 둔다’는 말이다. 공자가 열다섯 살 때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 데서 유래하여 15세를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지학(志學)은 위의 지우학(志于學)에서 딴 것이다. 공자 같은 성인도 나면서부터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부지런히 갈고닦은 끝에 이루었음을 강조한 대목이다. 즉, 지학은 인격 수양과 완성을 위한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로, 세월이 흐르면서 남성의 나이 15세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립(而立)’은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공자가 서른 살에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었다는데서 나온 말로 공자 자신의 체험에 바탕을 둔 말이다. 남성의 나이 30세를 달리 이르는 말로 쓰인다.

‘불혹(不惑)’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공자가 마흔 살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이때부터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남성의 나이 40세를 달리 이르는 말로 쓰인다.

‘지천명(知天命)’은 한마디로 ‘하늘의 명을 알았다’는 뜻으로, 남성의 나이 50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공자가 나이 쉰에 천명(天命). 즉, 하늘의 명령을 알았다고 한 데서 연유해, 50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여기서 천명이란,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하늘의 명령이나 원리, 또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가리키는 유교의 정치사상을 말한다.

‘이순(耳順)’은 글자그대로 ‘귀가 순해진다’는 뜻으로, 공자가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남성의 나이 60세의 비유적인 표현이다. 공자가 나이 15세의 지학, 30세의 이립, 40세의 불혹, 50세의 지천명을 거쳐 60세에 이르러 도달한 경지가 바로 이순이고, 다음이 최종의 경지인 70세 때의 종심이다. 공자가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보통 40세 때의 불혹까지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완성을, 50세 때의 지천명 이후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하늘의 원리, 곧 유교의 최고 덕목인 성인의 도(道)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이순은 학자에 따라 “소리가 귀로 들어와 마음과 통하기 때문에 거슬리는 바가 없고, 아는 것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지는 것”, 또는 “말을 들으면 그 미묘한 점까지 모두 알게 된다.”거나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한다.”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이해한다는 점만은 공통적이다.

이렇듯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바로 60세, 즉 이순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육순(六旬)’과 같은 뜻이다.

‘종심(從心)’은 ‘마음대로 한다’는 뜻으로, 70세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공자가 “나이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이에서 연유해 뒤에 나이 일흔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50세의 지천명과 60세의 이순을 거쳐 공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성인의 경지를 이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종심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혹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도 어떤 규율이나 법도ㆍ제도ㆍ원리 등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하든 일정한 법도가 있었다는 뜻이니, 바로 유교에서 말하는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이름이다.

이 종심과 마찬가지로 70세를 이르는 말에 ‘고희(古稀)’와 ‘희수(稀壽)’가 있다.

조회에서 돌아와 날마다 옷을 전당잡히고 /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매일을 강 어구에서 취하여 돌아온다 /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술빚이야 늘 가는 곳마다 있지만 /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사람이 칠십 살기 옛날부터 드물다네 /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꽃 사이 나는 나비는 보일 듯 말 듯 날고 / 穿花蛺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견)
물을 치고 나는 잠자리 천천히 날아다니네 / 點水蜻蜓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
만물은 함께 유전한다고 봄 풍광에 말 전하노니 / 傳語風光共流轉(전어풍광공류전)
잠시 감상함을 방해하지 말거니 /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

고희와 희수는 모두 중국 당(唐)나라 시성(詩聖) 두보의 〈곡강시(曲江詩)〉 중 “사람이 70까지 사는 것은 예부터 드물었다 /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또한 일본식의 표현도 있는데 66세를 일러 ‘미수(美壽)’, 77세를 일러 ‘희수(喜壽)’, 80세를 일러 ‘산수(傘壽)’, 88세를 일러 ‘미수(米壽)’, 90세를 일러 ‘졸수(卒壽)’, 99세를 이르는 ‘백수(白壽)’가 있다.

또 우리가 자주 쓰는 ‘방년(芳年)’은 스무 살을 전후한 여성의 나이를 일컫는 말로 방령(芳齡)ㆍ묘년(妙年)ㆍ묘령(妙齡)과 같은 뜻이다. ‘방(芳)’은 ‘꽃답다’는 뜻이고, ‘년(年)’ㆍ‘령(齡)’은 모두 ‘나이’를 뜻한다. 따라서 방년은 꽃다운 나이, 곧 스무 살을 전후한 여성의 나이를 가리킨다. 남성의 경우 갓(冠)을 쓰는 나이(弱)인 ‘약관(弱冠)’을 20세라고 하는데 이는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에 나오는 말로 넓은 의미에서 서로 대응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방년은 여성에게만, 약관은 남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과 같이 성별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서로 어울려 써도 틀리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국어사전에는 ‘여성의 스물 안팎의 나이’, ‘스물을 전후한 여성의 꽃다운 나이’, ‘이십 세 전후의 한창 젊은 꽃다운 나이’ 등으로 올라 있어 반드시 20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곧 스물을 전후한 무렵의 젊은 나이를 통칭하는 용어로, ‘방년 18세’, ‘방년의 꽃다운 처녀’와 같은 형태로 쓰인다.

‘망팔(望八)’은 나이 71세의 별칭인데 여든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장수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표현이다. 유교적 전통사회에서는 어른의 나이를 말할 때 구어(口語)인 일흔한 살이라 하지 않고 높이는 뜻으로 숫자 뒤에 세(歲)를 붙여 71세ㆍ80세ㆍ90세 등으로 표현하였다. 또 봉투나 기타 문서에 어른의 나이를 적을 경우에는 이순(耳順:60세)ㆍ고희(古稀:70세)ㆍ종심(從心:70세) 등과 같이 별칭을 사용하였는데, 망팔 역시 이러한 표현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71세가 되었으니, 80까지도 넉넉히 살 수 있겠다(살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여든을 바라본다’고 한 것이다. 이 같은 표현으로 81세를 뜻하는 ‘망구(望九)’와 91세를 뜻하는 ‘망백(望百)’이 있다.


요즘은 여성이 30살을 넘겨 결혼하는 예가 흔하지만 그 옛날에는 여성의 결혼적령기가 16세 정도였다. 해서 혼기에 이른 여성의 나이. 즉, 16세쯤을 일러 ‘과년(瓜年)’이라고 했다.

푸른 구슬이 외를 깨칠 때 / 碧玉破瓜時(벽옥파과시)
님은 마음을 쏟아 사랑을 한다 / 郎爲情顚倒(낭위정전도)
낭군에게 마음을 느껴 부끄러워하지 않고 / 感君不羞赧(감군불수난)
몸을 돌려 님의 품에 안겼네 / 廻身就郎抱(회신취랑포)

중국 동진(東晋)대의 대문장가 손작(孫綽)의 《정인벽옥가(情人碧玉歌)》에 ‘파과(破瓜)’란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이 과(瓜)’자를 파자(破字)하게 되면 ‘八八’이 된다. 따라서 여덟의 둘을 더하면 열여섯이 되는 것이다. 여자가 달거리(月經)를 처음 시작하게 되는 열여섯 살쯤의 나이를 한자로 파과기(破瓜期)라고 하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정리하자면 옛날에는 ‘과년’을 여성의 결혼 적령기인 16세 정도로 보았던 것이다.

이와는 다른 뜻으로 남성의 경우 ‘과년’은 예순네 살을 가리킨다. 예전에 ‘벼슬의 임기가 다한 해’를 과년이라 하였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관직에 오르는 사람은 의당 남성이었고, 관직에 있던 사람이 임기가 다해 물러나야 할 때가 되면 나이도 그만큼 먹게 마련이다. 따라서 위의 ‘八八’을 곱하면 64가 되므로, 남성의 경우 과년을 64세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년은 남성의 나이 64세라는 의미는 거의 없어지고, 혼기에 접어든 여성의 나이를 뜻하는 말로 일반화되었다. ‘파과’를 ‘파과지년(破瓜之年)’으로 쓰기도 한다.

참으로 세련되고 의미심장한 단어들임에 틀림없다. 하나하나의 별칭 속에 성현들의 지혜로움이 듬뿍 담겨있다.

< 2015.09.17. 한림(漢林)최기영 > ericchoi112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