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의 이른 아침, 열린 베란다 문틈 사이로 천마산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우리 마을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인구가 900%나 늘어난 새로 조성된 택지개발 지구다.
4~5년 전만 해도 인구는 4천여명 원주민이라야 그중에 약 반 정도나 될까? 십 수 년 전, 길게 잡아 20년 전만
해도 이름만 대면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아버지가 누구고 형제는 누구누구며, 살림살이가 어떤지 훤히 꿸 수
있는 그런 동네였다.
경춘선 열차가 지나고, 경춘가도가 서울을 빠져나와 교문사거리를 거쳐 도농삼거리에서 경강국도와 갈라져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남양주의 호평동이 우리 마을이다. 경춘로를 사이에 두고 비슷한 규모의 마을
평내동이 마주보고 있다. 예전에는 평내라는 이름으로 한 마을이었다. 지금은 두 마을을 합치면 인구가 7만에
이르니 제법 큰 마을이 아닌가? 길게 뻗은 철로에 고즈넉하던 옛 역사 평내역은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있고
육중한 콘크리트로 천년이 가도 끄떡없을 것 같은 고가 철로가 두 마을의 경계를 이루며 가로질러 있고, 두
마을의 이름을 평등하게 반영한 평내 호평역이 중심에 자리 잡았으며, 꿀벌이 꽃을 탐하며 여름내 분주하던
드넓은 파밭 한가운데는 대형 할인마트가 우뚝 서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여민 주머니 속을 탐하고 있다.
나는 진건읍 사릉에서 태어났으며 사릉은 우리집안이 14대를 이어오며 살고 있는 곳이다. 이를테면, 나는
지역의 토종 원주민인 것이다. 물론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의 구리, 남양주, 의정부, 동두천, 양주,
인접한 서울의 일부분까지가 양주군이었으니 크게 보면 양주의 토박이인 셈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일대에 중·고등학교는 많지 않았고, 지금의 구리시(당시에는 남양주군 구리읍, 구리라는 명칭보다는 통
상 교문리라 불렀다)를 포함해 몇 개의 읍면을 아울러 학교가 하나씩 있었으며, 그중 하나인 금곡중·고등학교
가 내가 속한 학군인 관계로 나는 금곡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폭넓은 지역적 친우관계가 형성되었다.
물론 구리에도 지금까지 많은 친구들이 살고 있으며, 친 누이와 누이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
당시에는 금곡은 물론 양정, 지금, 도농, 구리, 진건, 와부, 조안, 평내, 호평, 화도, 수동, 별내, 멀리는 강원
도에서까지 금곡중·고등학교로 진학을 하였으니 현관만 나서면 학교가 하나씩 있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
상이 가지 않는 실로 광범위한 학군범위이고 이렇게 형성된 친구관계가 얼마나 두터운가는 지금 학생들이나
전입 시민들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 이곳저곳에서 행정구역 자율통합에 대한 바람이 뜨겁게 몰아치고 있다. 구리와 남양주도 이중 하나이
며, 통합에는 역사성과 문화, 생활권의 동질성이 대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절실한 생각이다.
애시 당초 구리와 남양주는 따로 떨어뜨려서는 안 되는 역사공동체, 운명공동체요, 생활공동체이며, 문화공
동체였다. 지금까지도 그러한 공동체적 생활범위에는 큰 차이가 없으며 구리와 남양주가 연관성이 전혀 없는
다른 행정구역이라는 것은내 입장에서 보면 사실 지금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교육청도, 세무서도, 민방
위교육장도, 지금은 신설되어 분리되긴 했지만 등기소, 경찰서, 소방서, 백화점도 같이 쓰고, 극장도 같이 쓰
고, 하물며 양쪽에서 태어난 사람은 주민등록 뒷자리번호까지도 거의 같지 않은가? 이렇듯 나누어질 것이라
고는 생각지도 못하며 불가분의 관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던 행정구역이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어느 날 갑
자기 두 개로 분리되었고, 분리가 된 상태에서도 마치 한 몸처럼 얽혀서 하루에도 몇 번씩 두 시를 넘나들며
생활 하다보니, 그동안 분리된 것으로 인한 불편함조차도 모르고 지내온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통합이 되어
도 그에 따른 생활의 불편함이나 혼란, 어색함 등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이대로 더 세월을 보내다가는 지역의
생활, 역사, 문화 등에 서서히 틈새가 생길 것이고 결국에는 이질감이 깊어져 지역분리가 고착화되고 말 것이
다. 계기가 어떻든 간에 기왕에 통합의 이야기가 나오고 논의가 개진되었으니 이러한 양 시의 숙명적인 관계
가 잘 검토되어 합리적이고 실리적인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자칫 이번 기회를
놓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어려움과 고충이 따를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모든 일은 적당한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윤덕규/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