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귀곡산장에 들다.
귀곡산장의 황당함은 숙소의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더욱 구체화됐다.
낡은 문은 삐거덕 거렸고 목조 바닥은 밟을 때 마다 군데군데 울렁 거렸다.
삐거덕 거리는건 건물만이 아니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관리인의 태도는 건물보다 더 낡아 있었다.
> 몇 분 이세요?
하루 종일 같이 움직였지만 순간적으로 숫자를 묻는 질문에 보이는 대로 인원을 세어보니 여섯 명 이라
▷ 여...섯... 명 인가...
라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 똑바로 말하세요. 내가 들어올때 다 세었어요.
라는 퉁명한 지배인의 면박이 날아왔다
▷ ......(멍~~)
관리인이 인원을 묻는순간 공교롭게도 김길전 광주지부장님이 잠깐 베란다에 나가계셨고 나는 보이는 대로 여섯 명이라 말하다가 다시 일곱이라 정정할 찰나에 관리인의 면박이 날아든거다.
입실 시간도 많이 늦은데다 숙박 인원이 6명 기준으로 되어있는데 1명이 초과된데 대한 추궁성 힐책이지 싶었다.
이런경우 고객이 추가요금을 지불하면 불편함 없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조치해 주는게 보통이지 이렇게는 안하는데 이번 반응은 전혀 의외의 반응 이었기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관리인의 민감하고 단호한 반응에 순간 우리 일행은 할 말을 잃고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추가 요금을 줄테니 이부자리좀 더 달라해도 됐단다. 안받을테니 있는 이불 가지고 그냥 자란다. 그리고는 아무런 조치도 안해주고 휙~ 나가버렸다.
혼자 여성이신 발행인께서는 이런 상황이 어이가 없으셨는지 본인께서 다시 제주지부장 계신곳으로 가서 주무신단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고 우리를 내려준 버스마저 돌아가 버렸으니 되돌아갈 상황도 되지 못했다.
그렇게 지배인이 돌아가고 상황 적응에 얼마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뭔가 속이 허하고 강력한 알콜 결핍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냉장고를 뒤지고 여기저기 뒤적거려 봤지만 먹을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약 드실 분들의 물 한모금 조차 없었다. 얼른 그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어 요기거리를 요청하며 조금 전 상황에 대해 약간의 항변을 했더니 오히려 더 버럭이며 마시고 먹을 거리는 본인이 숙소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파는거라서 우리한테는 팔지 않겠단다. 물건 주인이 팔지 않겠다니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없으면 더 간절한 법인가, 일이 이렇게 되니 더더욱 시장기와 알콜에 대한 그리움이 엄습해 왔다.
8. 궁하면 구하라. 007작전 개시!(역사는 밤에...)
펜션이면 당연히 편의시설이 있을줄 알았지 누가 이렇게 삭막한 오지에 덩그러니 버려질거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과거 다년간 군사작전을 담당했던 몸이라 서서히 야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건은 뭐 비교적 간단히 해결되리라. 빨리 해결해서 주(술)님의 은총에 목마른 발행인님, 고철수이사장님, 표천길원장님, 김만수박사님, 한병진 위원장님, 김길전 광주 지부장님께 은혜를 입혀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오산이었다.
제주는 육지하고 특히 서울과는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걸 미리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하 우여곡절 겪은 내용은 사연이 기막히고 글로 다 적기 어려운 내용이라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기억속에 넣어두고 가끔 술자리 무용담으로 안주삼아 꺼내 먹으면 얄팍한 지갑 지키기에도 그만일테니까.
어찌되었는 고립무원 오지에서 청량제처럼 달콤한 주님과 허기진 민생고를 원만하게 해결 하였으니 그것으로 작전은 성공한 셈이다.
조천읍 교래의 캄캄한 밤은 그렇게 희뿌연 새벽으로 빨려 들어갔다.
(4부에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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