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文化)를 생각하며.....
문화관련 단체에 실무책임자로 근무하는 나는 종종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볼 때가 있다. 문화의 사전적인의미도 의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문화와 우리 삶의 연관성에 대해서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어느 순간 끓어오르는 의협심에 주먹을 불끈 쥐며 사명감을 불태울 때도 여러 번이다. 어찌 보면 매 순간을 그러한 의협심에 빠져서 고민하며 사는 것이 나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문화를 생각하다 보면 참으로 많은 것이 떠오른다. 범위가 너무 넓고 방대해 무엇부터 어떻게 정리해 가야할지 자신도 없어지고 다 생각하고 정리할 만큼의 식견도 갖추지 못했으니 섣부르게 덤비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항상 반복적으로 떠오르며 안타깝게 생각되는 부분은 몇 가지가 있어 정리는 한번쯤 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정리도 할 겸 오늘은 문화에 대한 나 자신의 개념정립을 한번 해 보아야겠다.
우리는 문화를 떠나 살수 없으며, 문화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바다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라는 바다의 환경은 다른 여러 분야의 조건에 비하면 척박하고 황량하기까지 하니 이러한 환경 속에서 문화가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기는 어려울 것이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말 것이다.
문화에 대하여 우리는 삶의 질과 연관하여 이야기 하곤 한다. 인간의 의, 식, 주에 대한 기본적 욕구가 해결되면 다음단계로 갈망하는 것이 결국은 문화적 욕구라는 말과도 상통하는 얘기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 절대적 가난을 벗어던지고 개발도상국을 넘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고 공공연히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질도 선진국과 어깨를 견줄 만큼 높아져 있을까?
그간 우리의 문화정책은 개발정책의 중요성에 밀려 항상 언어적 관심 외에 실질적으로는 적절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하고 후 순위로 밀려 양보를 권유받아왔고, 상황이 좋아지면 문화의 획기적인 투자와 지원이 있으리라 믿으며 긴 세월을 견뎌왔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많은 기회상실과, 자생력부족으로 기반이 약해지고 일부는 수명을 다하고 맥을 끊기는 우를 범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문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정신이다. 문화가 죽으면 혼이 나가고 육체만 살아있는 좀비의 형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상황이 좋아진 다음으로 문화에 대한 관심을 미룰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 맞는 적절한 문화적 투자를 제도화하여 몸과 마음이 함께 성장하는 시스템을 갖출 때이다. 몸집은 비대하게 커져 가는데 정신은 이에 따르지 못한다면 이는 정상적인 성장으로 볼 수 없으며, 자칫 육체를 컨트롤 하지 못하여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거나 생기 없는 거구가 의미 없는 자리만 차지하는 실속 없는 개발후유증으로 남을 수도 있으니 선후를 구분하지 말고 개발정책에 비례한 문화정책을 반드시 동시에 수립하여 시행하면 어떨까?
개발과 관련하여 최근 우리의 도시개발 형태를 보면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우리의 도시개발 형태는 기존의 상황을 완전히 무시하고 특정한 곳을 지정하여 거대한 도시를 인위적으로 만들면서 원주민의 대다수는 밖으로 밀려나고, 그동안 생활방식과 가치관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완충이나 조정의 시간 없이 일시에 모여들어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 신도시 형태의 개발 아닌가? 이렇다 보니 겉모습은 그럴싸하고 멋지게 잘 만들어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놓은 듯하지만, 실상 제일 중요한 그 속에서 살아가야할 사람과 관련해서는 깊은 고민이나 배려가 빠져있다. 짧은 시간에 한곳에 이주하여 사는 사람들 간에는 서로 인간적인 대화를 나눠볼 기회도 없고 바람직한 공동체적 의식이 생길 여유도 없으며, 생각이 다르고 그간에 살아온 문화가 달라 서로 융합하기가 어려운, 중심을 잡아야 할 정체성이 없어 몸 따로 마음 따로 인 도시가 형성되어 실제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그 예가 따뜻한 인간미의 상실과 이로 인한 극단적인 이기주의, 무관심, 심각한 배금주의, 자본에 따른 계층형성, 님비현상 등이다.
진정으로 살기 좋은 환경이란 진학률 높은 우수한 학교가 있다거나 병원이 가깝고, 쇼핑센터가 가까이 있으며, 도로가 잘 닦인 것이 아니라 언제고 마음 편히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서로간의 고민을 들어주고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정다운 이웃을 옆에 두고 사는 것이 아닐까?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통해야 하고, 마음이 통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언뜻 생각해도 상당히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좋은 집, 좋은 옷, 기름진 음식만으로는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없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여 정신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문화 아닌가? 마네킹에 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고 화장을 시켜도 그것을 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으며, 남의나라 땅에 우리 자본으로 아무리 큰 도시를 건설해도 그것은 우리 것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속에 우리의 정신이 깃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루한 옷에 화장 없는 얼굴 일지라도 정신을 올바로 갖춘 사람은 충분한 인격적 대우를 받을 수 있으며, 우리가 애써 건설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에 우리문화가 넘치는 실질적 우리 도시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총칼 없는 전쟁, 피 흘리지 않는 전쟁, 문화전쟁인 것이다.
남북의 통일을 이야기 할 때도 우리는 남과 북의 경제적 차이를 논하기에 앞서 긴 시간을 단절되어 살아오는 동안 서로간의 생활방식이나 의식적 사고의 괴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물질적으로 잘살고 못사는 차이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문화가 틀려 겪어야하는 어려움일 것이다.
문화란 우리의 삶에서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서로 다른 저마다의 다양한 의식을 ‘일률’이라는 잣대가 아닌 상호 ‘인정’이라는 큰 그릇에 담아내어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공통분모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람의 감성을 일깨워 따뜻한 인간본성을 자극하여 생활에 찌든 마음을 닦아주고, 각박함에 얼룩진 정신을 맑게 해주는 학문, 예술, 종교 등이 각각의 혹은, 몇 가지를 덜어 담는 그릇이라면 문화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담을 수 있는 아주 커다란 그릇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는 것. 나는 그것을 문화라고 생각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이웃 간에 무뚝뚝한 얼굴보다는 환한 미소가 아름답고, 아파트 외벽에 내걸린 비우호적 거부, 투쟁, 쟁취현수막 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새로운 이웃을 맞이하려는 먼저 살고 있는 주민들의 아량 있고 우호적인 환영현수막이 우리를 훨씬 기분 좋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리적 안식처를 계획하고 만들면서 반드시 거기에 우리의 정신이 함께 쉴 수 있는 정신적 안식처가 되도록 투자하고 정책을 만드는 것은 결코 아까운 일이 아니며 세금 낭비했다고 지탄받을 일도 없는 아주 환영 받을만한 일이다. 이런 일은 나중에 돈 생기면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문화는 지금 바로, 매순간, 언제나 꼭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한 일이다.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뜨거운 열정도 필요한 일이다. 아주 작지만 내가 그런 일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렇지만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나의흔적 > 조용한밤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중벌초 (0) | 2010.08.31 |
---|---|
기억(記憶)의 의미(意味) (0) | 2009.11.13 |
10월을 보내며..... (0) | 2009.11.02 |
우와 이게 웬 횡재야!!! (0) | 2006.01.05 |
나이먹었다는 증거...... (0) | 2005.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