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흔적/조용한밤에....

우중벌초

은빛사연 2010. 8. 31. 20:24

우중벌초

 

                                                                                                                                                   문촌.. 윤덕규

 

 아침부터 세차게 퍼붓는 빗줄기를 맞으며 선산으로 향했다.

선산으로 올라가기 전 이런저런 연장을 챙겨놓고 좀 기다렸다 빗줄기가 잦아든 연후에 올라갈까 생각하고 대문밖에 서서 연거푸 담배를 빼어 물고 빗줄기 잦아들 때를 기다렸지만 내리는 비는 여간해서는 그 기세가 꺾이지 않을 것 같아 우리 삼 형제는 기왕에 오늘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을 깨닫고 그대로 우중벌초를 각오하고 빗줄기 속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생각대로 오전 내내, 아니 오후가 되어서도 빗줄기는 더욱 세차게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하며 그 기세를 늦추지 않고 퍼부었다.

 

 우리 집안은 매년 8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을 벌초 겸 종친회 날짜로 정해놓고 있는 터라 우리가 올라갔을 때 이미 선산 이곳저곳에서 세찬 비를 맞으며 풀 깎는 예취기 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 소리는 더더욱 세차게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울려 퍼졌을 테지만 오늘은 내리는 빗소리에 가려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오곤 했다.

 

 우리 집안이 남양주에 터를 잡고 산 것이 벌써 14대째, 약 400여 년을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고 살아온 터라 선산은 동네 어귀에 비교적 크게 자리하고 있는데 몇 해 전 경춘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새로 나면서 도로부지로 일부가 수용되어 팔리고 그 도로 때문에 양분되어 나누어져 벌초를 할 때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번 벌초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난주 내가 모꼬지 관계로 청평에서 주말을 보낼 때 형님과 동생이 여러기의 벌초를 미리 해 둔 관계로 다른 해 보다 훨씬 수월하게 끝낼 수 있어서 그나마 큰 힘을 덜 수 있어 나로서는 너무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주 형과 동생이 절반 이상을 미리 벌초해 두지 않았더라면 오늘 아마도 저녁때까지 했어야만 겨우 마무리가되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삼 형제는 아버지가 사촌까지 합쳐 4형제 중 막내인 관계로 제사며, 벌초를 주관해서 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지만 이상하게도 언제부터인가 거꾸로 우리 형제들이 아니면 조상 돌보는 일이 소홀해지고 심지어는 관리가 없어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형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할 사람이 따로 있는데 우리도 한발 물러서서 관망만 하자고 건의도 해 보았지만 내가 그러면 형은 우리는 자손 아니냐며 굳이 혼자라도 올라가서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체구로 일을 해놓고 내려오는 착하디착한 성격인지라 그 모습이 애처로워 결국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대로 해마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한 두 해 그리되다 보니 어처구니없게도 이제는 자연스레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몫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말이 좋아 즐기는 것이지 일 년에 한 번 돌보는 일이기는 하지만 워낙에 여러기의 묘소를 관리하는 것이 더울 때는 더운대로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리는 상황대로 힘들고 어려워 안 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장대 빗속에 몸은 무겁고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장점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벌초의 적 벌떼를 오늘은 만나지 않았다. 각종 벌레와 짜증 나는 모기도 세찬 빗줄기에는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조상은 섬기는 후손들에게 반드시 덕을 내려주는 모양이다.

오늘도 초주검이 되어 내려와서 밀려오는 피로에 정말로 오래간만에 낮잠을 한잠 자고 늦은 시간인 지금 오늘의 조상 섬긴 이야기를 글로 남길 수 있는 이렇게 큰 은혜를 주시지 않는가?

조상을 잘 섬기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는 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201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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